- 미전도종족 선교는 지상명령 성취. 세계선교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선교가 세기를 거듭하면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전에는 일단 가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선교사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이제는 선교 활동이 매우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널드 맥가브란 박사의 교회 성장학 이론이 선교현장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문이 열린 지역에는 충분한 선교적 자원과 활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선교가 마무리된 상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보통 전세계 모든 인구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상태를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보다 다른 관점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교의 사명만을 살펴봐도 그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마태복음 28:19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panta ta ethne)으로 제자를 삼아”, 마태복음 24:14에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pasin tois ethnesin)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누가복음 24:47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panta ta ethne)에게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
여기에서 ‘족속’, ‘민족’등으로 표현되어진 단어는 헬라어 ‘Ethnos’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종언어학적인 종족 그룹(ethnolinguistic people group)’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계선교의 사명을 주실 때 전 세계 인구 개개인을 지칭하기보다는 모든 종족에게 복음이 전달되는 것에 방점을 두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선교가 마무리된 상태’는 현실적으로 ‘모든 종족(ethnos)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제자로 삼아 스스로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을 정도록 자립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 선교를 마무리하게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재의 자원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무엇인가?’와 같은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미전도종족 선교는 이런 질문에 대한 전략적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세계 선교의 마지막 퍼즐 맞추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지리적인 접근보다 효율적인 종족단위 선교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까지의 선교는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타문화권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선교 방법을 찾아가는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선교지는 문화적으로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해가 항상 우선이었습니다. 선교적 접근도 항상 지리적인 면이 기준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로 갈 것인지, 어느 도시로 갈 것인지가 선교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이것은 독일 교회가 주도했던 국가주의 선교론의 영향일수도 있고, 1800년대 식민지 시대에 선교지로 떠났던 선교사들의 어쩔수 없는 현실적 상황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서구 열강은 종족이나 부족단위로 존재하던 식민지들을 쉽게 통치하기 위해 정치적 국가단위로 통폐합했습니다. 그래서 서구인들에게 타문화권 개념은 정치적 국가 단위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고 선교에도 자연스럽게 그 개념이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학자들중에 국가단위 선교를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정치적 집단인 국가는 성경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단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지리적 개념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각국의 문화와 전통이 점점 지구촌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다른 차원의 분열과 장벽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종 장벽’이라는 것인데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이나 갈등은 대부분 종족간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안에서도 정치적인 갈등을 일으킬 때는 종족의 이슈가 크게 작용합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텐데 향후 지향해야 할 선교 전략은 종족단위로 접근하여 종족안에 교회를 개척하는것 이어야 합니다.
복음이 가장 잘 전파되는 단위는 가족이라고 합니다. 같은 혈연(인종), 언어, 문화, 전통을 가진 집단안에서의 전파력이 가장 빠르고 정확합니다. 미국이 다민족 국가라고 해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히스패닉등을 한꺼번에 모아 영어로 전도하는 것보다 각각 인종별로 구별하여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복음을 전하면 훨씬 쉽고 효과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전도종족 선교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돕는 출발점입니다.
- 현실적 선교 자원의 불균형을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미전도종족 선교 개념이 활성화되기 이전부터 선교학자들은 선교현장의 지나친 ‘경쟁과 중복 투자’가 세계 선교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지적했습니다. 카톨릭 교회처럼 중앙 통제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개신교에는 없기 때문에 교단별로, 교회별로, 단체별로, 개인별로 필요에 따라 지역에 배치되다 보니 집중되는 지역은 너무 집중되고 소외되는 지역은 너무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는 영혼들은 계속 복음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미국교회 속에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복음에서 소외된 영혼들에 대한 관심을 독려한 적이 있습니다.
[그림1. 복음을 들어야 할 세계 인구]
[그림2. 선교사 파송 지역및 숫자]
전세계 지도위에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의 인구 분포도와 현재 파송되어 있는 선교사의 분포도를 교차하여 보면 이 현상은 뚜렷하게 보입니다. (위의 그림1 은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의 인구 분포도입니다. 그림2는 현재 파송되어 있는 선교사들의 분포도입니다.) 미전도종족 선교는 이런 현실적 불균형 현상을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집중되고 중복 투자되고 있는 곳에 앞으로도 계속 중복 투자하지 말고 가능하면 소외된 곳의 영혼들도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미전도종족 선교의 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글의 원시인이 아니라 복음에서 가려진 영혼을 선교하는 것입니다.
미전도종족 선교를 오지나 아프리카 정글에 사는 원시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전도종족은 미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고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도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사역지 인근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미전도종족 선교는 정글에 고립된 종족들도 물론 포함하지만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영혼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선교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성장학의 역할이 컸습니다. 도날드 맥가브란 박사는 선교지를 수용성에 따라 구분했습니다. 복음의 문이 열려 있어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지역을 ‘추수지역’으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복음에 반응이 전혀없는 지역을 ‘비추수지역’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추수지역에서 한 사람이 구원받으나 비추수지역에서 한 사람이 구원받으나 하나님의 나라는 한 사람만큼 커지는 것이라면 선교사는 마땅히 추수지역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추수 가능지역에서 사역하면 일년에 수백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지만 비추수지역에서 사역하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두명의 결신자를 만들수 없다는 것입니다.
맥가브란 박사의 이런 주장은 1950년대 이후 선교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선교지를 결정할 때 그곳이 선교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또는 자기 자신의 은사에 비추어 어떤 대상에게 가야할 지를 살피기 보다는 추수지역이냐 비추수지역이냐의 기준에 따라서 추수지역으로만 가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추수지역은 복음이 왕성하게 전파되는 지역이거나 아니면 후에 복음화 지역으로 변하여 결과적으로 선교사들이 복음이 많이 확산된 ‘전도된 지역(evangelized area)’에 집중되는 현실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미전도종족 선교는 이런 현실적 상황을 넘어서 복음이 필요한 영혼에게 초점을 맞추어 선교하자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의 문이 열린 지역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위험하고 문이 닫혀 있는 곳에도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where Christ was not known)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습니다.’(롬 15:20-새번역)라고 고백했습니다. 실제 맥가브란 박사의 업적과 이론 정립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지만 ‘추수밭 이론’은 이시대 선교 상황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미전도종족 선교는 맥가브란 박사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전략에 대한 건설적 비판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